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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방영회 | 방영일 | 방영시간 | 상세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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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순간, 8회 | 20061217 | 51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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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타이틀
00:49- 전CM 02:51- 스탈린 대테러(1937-1938) 희생자 - 우크라이나 키예프 인근 비코브냐 숲 . 나무마다 묶여있는 리본과 사진, 메모와 편지 . 스탈린때 희생당한 우크라이나인, 유대인, 폴란드인 . 1962.8, 수많은 유골 발견 - 우랄 북부 도시 예카테린부르크 . 유골발견 . 희생자 이름중 눈에 띄는 한국인 이름들 - 돈스코예 공동묘지(모스크바) 08:26- 대테러 - 1934.12.1 저녁, 레닌그라드 당 총서기 키로프 암살 - 키로프/ 스탈린의 친구이자 지원자 - 키로프 암살과 스탈린과는 무관하다는 증거 - 노동조합 회관 - 전시재판(1936년) - 스탈린 헌법 - 엘리트 아파트 . 거주민 대부분이 대테러 기간중 체포 경험 - 비밀경찰 - 제 17차 당대회(1934년) . 중앙위 대의원 70%가 총살 - Show trial(전시재판) - 1940년, 멕시코에 망명중이던 트로츠키 암살 22:40- 1930년대 스파이 색출작업 - 1931년 일본 만주침략 - 1937년 중일전쟁 - 1933년 히틀러의 독일 집권 -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 있던 마그니토고르스크 - 민간인 스파이 색출 . 무고한 한국인 체포, 처형(박진순, 김단야, 주세죽) . 주세죽이 남긴 재봉틀 . 박헌영과 주세죽의 딸 박 비비안나 - 극동지역에 살던 한국인 탄압 .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최소 20만명) - 페름 강제 노동 수용소(굴락) 37:27- 혁명의 의미와 유산 - 1991년 구 소련 붕괴 - 러시아 혁명이 20세기 세계정치에 미친 영향 . 히틀러와 나치의 권력 장악 . 유럽의 파시즘 등장, 중국혁명에 영향 - 북한, 스탈린식 체제 - 인간성에 상처 -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선 러시아 - 소비에트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 레닌 생일집회(2006.4.22) 49:25- 다음주 예고 50:05-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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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순간, 7회 | 20061210 | 52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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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타이틀
00:46- 전CM 02:33- 레닌 사망 - 레닌의 발작, 신체일부 마비(1922.5.25) . 레닌의 사망(1924.1.21), 장례식 05:42- 스탈린의 권력장악 - 좌익반대파는 트로츠키 중심, 우익반대파는 부하린 중심 - 스탈린의 관망 - 트로츠키의 관료주의 비판 - 반스탈린, 당에서 축출(1927), 트로츠키 유배 11:01- 식량위기와 농업집단화 - 1927년 15차 당대회 - 스탈린의 우랄과 시베리아 시찰 13:36- 농업집단화 - 스탈린의 글 <대 전환의 해/당 기관지 프라우다 기고>(1929.11.7) . 스탈린의 혁명을 알리는 선언 - 농업집단화(1930.1) . 꿀락(부농)으로 낙인찍히면 모든 것을 몰수 당하고 집단 이주농장에 편입 . 농민들의 저항/가축도살 19:10- 1차 5개년 계획 - 1928년 부터 1차 5개년 계획 . 드네프르 수력댐 . 마그니토고로스크에 거대한 제철도시 건설 . 생산성 향상을 위한 우다르닉(돌격 노동자)운동 - 스타하노프 운동 . 트랙터 영웅, 사탕무우 영웅 - 스탈린의 임금 평등주의 비난 . 성과급제도 도입 - 1930년대, 노동 이동(직장 이전) . 국내통행증제도, 노동조합은 국가에 종속 - 1932년, 스탈린의 1차 5개년 계획 성공 선언 32:32- 러시아 산업화 - 1930년대 세계 대공황 - 동상 '전선의 후방'/ 독일 파시스트에 대한 승리를 상징 36:56- 대 기근 - 아내를 살해, 두 아이에게 인육을 먹인 사내 체포 - 아사자가 750만명 이상이란 보고 39:33- 농민과 노동자들의 생활상 - 가장 큰 피해자인 농민/ 주거 이전 불허 - 도시노동자/ 천막이나 토굴에서 생활 - 코무날카(공동주택) 45:16- 교육 - 교육은 유일한 혜택/ 직업훈련과 초등교육 프로그램 실시 - 드네프르 제르진스키 대학 -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49:47- 에필로그 50:50-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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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순간, 3회 | 20061203 | 55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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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순간, 6회 | 20061203 | 49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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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 전CM 02:21- 브레스트 리토프스크 강화조약 - 트로츠키의 제안을 독일은 거부 - 독일의 러시아 침공 - 브레스트 리토프스크 평화조약 체결 . 러시아 영토의 3분의1을 독일에 내줌 04:33- 연합국의 러시아 개입 - 1918.3.10 . 볼셰비키, 모스크바로 수도 이동 . 레닌 집무실 - 영국과 프랑스군, 러시아 진주 . 체포된 볼셰비키들 - 일본군, 블라디보스톡 점령 - 연합국의 지원을 받은 유데니치(백군) - 제헌의회 정권 수립 08:49- 내전 - 체코군단 반란 . 볼셰비키, 지방 억류 황제 니콜라이2세 처형 . 사마라 제헌의회와 합세 모스크바 진격 . 전략적 교두보 카잔 점령 - 적군, 카잔 탈환작전 . 체코군단 격침 - 백군, 볼셰비키 정권 위협 . 영화 <차파예프> 장면 - 1918년, 적군과 백군의 대규모 전투 - 전시공산주의 . 식량부족/ 식량징발대 . 노동 규율/ 공장에 전문가 파견, 노동자 통제 . 사회혁명당 좌파 본부(모스크바) / 리더 마리아 스피리도노바(사진), 레닌 독재 타도를 위한 쿠데타 . 레닌의 미헬손 공장 방문(1918.8.30) / 사회혁명당 카플란의 레닌 암살기도 . 러시아 기아 30:26- 농민반란과 도시노동자 파업 - 크론슈타트섬 수병 . 1921.3.1 야코르나야 광장에서 수병들의 집회 . 수병들의 반란 - 레닌의 반란진압 37:29- NEP(신경제 정책) 39:35-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 - 코민테른 대회 . 궁전광장(1920.7.19) . 광장 한켠에 휘날리는 태극기 - 조선의 독립운동가들 . 박진순(한인사회당) . 이동휘, 이극로, 박진순 3명 레닌과 회동 - 독일 노동자혁명(1919.1) - 헝가리 혁명(1919.3) 48:04-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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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순간, 5회 | 20061126 | 50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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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타이틀
03:51- 1917년 2월 혁명 - 타브리다 궁 . 의회 임시위원회 - 소비에트(평의회) . 페트로그라드 노동자, 병사 대표 소비에트 - 소비에트 집행위원회 - 임시정부 12:12- 1차 대전 - 일반명령 제1호 - 망명지에 있던 혁명가들 귀국 . 레닌 도착 - 직장폐쇄, 실업자 양산 21:22- 6월 대공세 - 독일에 대한 임시정부의 공격 - 점점 커지는 볼셰비키 지지 . 볼셰비키의 구호: 빵, 평화, 자유 - 영화 <10월> - 7월 사태, 무장봉기 . 레닌, 핀란드에 은신 - 노동자 적위대 - 볼셰비키 재기 - 카르포프카 31번지 38:15- 볼셰비키 봉기 - 1917. 10. 25 페트로그라드 군사혁명위원회 포고령 - 제2차 소비에트대회(1917. 10. 25) - 1917. 10. 26 새벽 2시 10분 겨울궁전 작은 식당 . 임시정부 종말 - 레닌의 각종 포고령 . 평화에 관한 포고령 . 토지에 관한 포고령 - 볼셰비키 정권 수립 . 레닌, 인민위원회 의장에 취임 - 11월, 제헌의회 선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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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순간, 4회 | 20061121 | 48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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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타이틀
00:20- 프롤로그 - 레닌동상 - 레닌의 사회주의 혁명선언 06:16- 혁명적 테러리즘 - 1906.1.16, 보리소글렙스크 역 . 마리아 스피리도노바에 의해 루제놉스키(탐보프 주지사) 피살 . 마리아의 법정 진술 - 겨울궁전 - 1881년 알렉산드로 2세 암살/ 암살범은 인민주의자 - 인민주의자들의 슬로건: 토지와 자유 - 알렉산드로3세/ 반체제 인사 감시하기 위해 비밀경찰 운영, 요새감옥 16:08- 레닌 - 1887년, 또 다른 황제 암살 음모 적발 . 음모에 가담한 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레닌의 형) - 레닌의 아버지는 세습귀족 . 레닌의 가족은 알렉산드로의 사면을 탄원했으나 처형 . 모두 고향을 떠나야 했던 가족 - 페테르부르크 법대에 입학한 레닌 . 비석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 법대 졸업 후 '노동계급해방투쟁동맹 결성' . 레닌의 체포, 시베리아 유형 . 30살에 유럽으로 망명, 결혼 .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기관지 '이스크라' 편집장 20:50-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노동당 - 1903년 창당 5년째, 2차 당대회 . 예기치 않은 분열: 다수파는 볼셰비키, 소수파는 멘셰비키 - 황제의 자리에 오른 니콜라이2세/ 개혁의 목소리 외면 24:29- 20세기초 러시아 - 한정된 토지에 늘어나는 농민, 지주에 대한 불만 고조 - 농민반란, 사회혁명당 지지 - 늘어나는 노동자, 노동운동 . 영화 <파업> 장면, 농촌출신 노동자들의 파업 - 페테르부르크 푸틸로프 공장 . 4명의 노동자 해고, 전체 노동자 파업 . 황제에게 청원행진, 수비대 발포사건 . 황제의 10월 선언: 노동조합과 두마(의회제도) 허락 - 노동자 반정부 무장봉기 - 레닌과 트로츠키 - 20세기 초에 시작된 러시아 전제군주정 . 1913년, 로마노프 왕조 수립 300주년 기념행사 - 1차대전(1914년)/ 전선의 니콜라이2세 - 수도 페트로그라드/ 라스푸친의 추문, 라스푸친 독살 40:23- 1917년 2월혁명 - 더욱 나빠진 식량사정 - 여성 노동자들의 시위 . 수도 전역으로 확대, 2월26일 시위대를 향한 발포 . 상관의 명령을 거부한 볼린스키 연대 - 2월혁명을 알리는 키르피치니코프의 방아쇠 . 반란에 합류한 수비대, 법원과 경찰서 습격 . 쌍두 독수리 철거, 시위 진압 포기 . 봉기 기간 내내 열차 안에 갇혀있던 황제 - 3월2일, 황제 니콜라이2세의 퇴위성명서에 서명 45:26-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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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순간, 3회 | 20051218 | 54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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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4- 타이틀
02:43- 프롤로그/1937년 난징대학살을 담은 세계 유일의 영상 존마기필름 08:15- 1,2부 요약 09:07- 100인 목베기 경쟁 - 1937년 난징에서는 일본군 장교 무카이 토시아키와 노다 타케시가 중국인을 상대로 전대미문의 살인 게임을 벌였다. 이른바 ‘100인 목베기 경쟁’. 그리고 무카이와 노다 소위는 종전 후 이 기사들이 증거로 작용해 1948년 중국에서 전범으로 처형당했다. 그로부터 68년이 지난 2005년 8월 일본에서는 ‘100명 목 베기 경쟁’ 기사의 진위를 가리는 재판이 있었다. 당시 일본 사회에는 왜 이런 기사가 필요했는가? 그리고 68년이 지난 오늘날 100인 목 베기 경쟁 기사의 진위 논쟁이 다시 불붙은 이유는 무엇인가? - 1937년 12월 1일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 - 100인 목베기 소송 지원회 . 두 소위의 유족들 최근 신문사 상대 소송, 패소 /타도로코 치에코(무카이 소위 딸) 인터뷰 . 난징기념관 대표적 전시물, 무카이와 노다 소위의 대형 사진 - 그 외 목베기 시합 사례 보도한 신문 기사들 . 사토(당시 도쿄 니치니치신문 사진기자) 인터뷰 . 모치즈키 자선전 <나의 지나사변> - 1971년 아사히 신문 '중국 여행' . 중국에서 일본군의 잔악행위를 고발한 르포 기사에서 '100인 목베기 경쟁' 일본사회에 재인식 /혼다 가츠이치(<주간금요일> 편집위원) 인터뷰 19:24- 증언, 1937년 그 해 겨울 - 1937년 7월, 이른바 노구교(盧溝橋)사건으로 중일전쟁을 시작한 일본은 파죽지세로 텐진, 베이징 등을 거처 11월 상하이를 점령했다. 일본의 다음 목표는 장제스 국민당 정부가 수도로 삼고 있는 난징. 별다른 저항과 전투가 없었는데도 일본군 난징 시민을 상대로 6주간의 대학살을 시작했다. - 난징 대학살 생존자들의 증언 - 난징전 참전 일본군의 증언/살인 강간 방화는 천하가 허락했다 . 난징전 참가 당시 33연대 일본군인들 증언 인터뷰 . 마쓰오카 다마키(<난징전 병사 102명의 증언> 저자) 인터뷰 - "먹일게 없어서 죽였다" . 하세가와(가명, 난징전 참가 33연대 6중대) 인터뷰 . 오노 겐지(<난징대학살을 기록한 황군병사들> 저자) 인터뷰 - 마쓰오카의 진실 찾기 . 초등학교 교사인 마쓰오카 다마키 지난 2002년 8월, 난징전에 참가했던 일본군 102명의 증언을 모아 책을 출간 - 12월 13일 오후 2시 "여단 명령에 의해 포로는 전부 죽인다" . 와카야마(가명, 난징전 참가 33연대 12중대)/미츠다(가명, 12중대) /오오가와(가명, 15사단 33연대)/야마다(가명, 33연대 8중대) 증언 - "전쟁이니까...", "천황의 군대니까..." . 하세가와(가명, 난징전 참가 33연대 8중대) /오카모토(가명, 33연대 6중대) 인터뷰 . 카사하라 도쿠시 교수(츠루문과대학교) 인터뷰 . 요시하라(가명, 12중대 3소대) 인터뷰, 치매로 누워있어도 그때 상만은 기억 . 마쓰오카 다마키(<난징전 병사 102명의 증언 저자) 인터뷰 48:46- 집단 최면, 반성하지 않는 일본 . 탐방단을 조직 일년에 몇차례씩 난징 기념관을 찾는 마쓰오카 /팡시엔원 교수(난징대학교) 인터뷰 . 베를린 유대인 희생자 홀로코스트 추모비 51:40-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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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순간, 3회 | 20051218 | 52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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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타이틀
00:19- 프롤로그/1937년 난징대학살을 담은 세계 유일의 영상 존마기필름 02:21- 전CM 05:25- 1,2부 요약 07:11- 100인 목베기 경쟁 - 1937년 난징에서는 일본군 장교 무카이 토시아키와 노다 타케시가 중국인을 상대로 전대미문의 살인 게임을 벌였다. 이른바 ‘100인 목베기 경쟁’. 그리고 무카이와 노다 소위는 종전 후 이 기사들이 증거로 작용해 1948년 중국에서 전범으로 처형당했다. 그로부터 68년이 지난 2005년 8월 일본에서는 ‘100명 목 베기 경쟁’ 기사의 진위를 가리는 재판이 있었다. 당시 일본 사회에는 왜 이런 기사가 필요했는가? 그리고 68년이 지난 오늘날 100인 목 베기 경쟁 기사의 진위 논쟁이 다시 불붙은 이유는 무엇인가? - 1937년 12월 1일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 - 100인 목베기 소송 지원회 . 두 소위의 유족들 최근 신문사 상대 소송, 패소 /타도로코 치에코(무카이 소위 딸) 인터뷰 . 난징기념관 대표적 전시물, 무카이와 노다 소위의 대형 사진 - 그 외 목베기 시합 사례 보도한 신문 기사들 . 사토(당시 도쿄 니치니치신문 사진기자) 인터뷰 . 모치즈키 자선전 <나의 지나사변> - 1971년 아사히 신문 '중국 여행' . 중국에서 일본군의 잔악행위를 고발한 르포 기사에서 '100인 목베기 경쟁' 일본사회에 재인식 /혼다 가츠이치(<주간금요일> 편집위원) 인터뷰 17:02- 증언, 1937년 그 해 겨울 - 1937년 7월, 이른바 노구교(盧溝橋)사건으로 중일전쟁을 시작한 일본은 파죽지세로 텐진, 베이징 등을 거처 11월 상하이를 점령했다. 일본의 다음 목표는 장제스 국민당 정부가 수도로 삼고 있는 난징. 별다른 저항과 전투가 없었는데도 일본군 난징 시민을 상대로 6주간의 대학살을 시작했다. - 난징 대학살 생존자들의 증언 - 난징전 참전 일본군의 증언/살인 강간 방화는 천하가 허락했다 . 난징전 참가 당시 33연대 일본군인들 증언 인터뷰 . 마쓰오카 다마키(<난징전 병사 102명의 증언> 저자) 인터뷰 - "먹일게 없어서 죽였다" . 하세가와(가명, 난징전 참가 33연대 6중대) 인터뷰 . 오노 겐지(<난징대학살을 기록한 황군병사들> 저자) 인터뷰 - 마쓰오카의 진실 찾기 . 초등학교 교사인 마쓰오카 다마키 지난 2002년 8월, 난징전에 참가했던 일본군 102명의 증언을 모아 책을 출간 - 12월 13일 오후 2시 "여단 명령에 의해 포로는 전부 죽인다" . 와카야마(가명, 난징전 참가 33연대 12중대)/미츠다(가명, 12중대) /오오가와(가명, 15사단 33연대)/야마다(가명, 33연대 8중대) 증언 - "전쟁이니까...", "천황의 군대니까..." . 하세가와(가명, 난징전 참가 33연대 8중대) /오카모토(가명, 33연대 6중대) 인터뷰 . 카사하라 도쿠시 교수(츠루문과대학교) 인터뷰 . 요시하라(가명, 12중대 3소대) 인터뷰, 치매로 누워있어도 그때 상만은 기억 . 마쓰오카 다마키(<난징전 병사 102명의 증언 저자) 인터뷰 46:24- 집단 최면, 반성하지 않는 일본 . 탐방단을 조직 일년에 몇차례씩 난징 기념관을 찾는 마쓰오카 /팡시엔원 교수(난징대학교) 인터뷰 . 베를린 유대인 희생자 홀로코스트 추모비 48:18- 다음주 예고 49:31-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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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순간, 2회 | 20051211 | 53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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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4- 프롤로그(1937년 난징 대학살을 담은 유일한 영상 존마기필름)
07:49- 타이틀 08:20- 1부 요약 09:51- 무엇이 아이리스 장을 죽음에 이르게 했는가? - 97년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50만부를 훌쩍 넘긴 <난징의 강간>이 서구 사회에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 계기가 될것이라 판단한 일본의 부정파들은 반일위서로 규정, 일본어판 <난징의 강간>을 출판 못하게 하고 비판서들을 출간해 잘못 인용된 사진들을 근거로 난징 대학살 전체를 부정한다 - 인터뷰: 크리스틴 초이(뉴욕대학교 교수) - 일본 부정파들의 논쟁으로 심한 심리적 압박 . 크리스틴 초이(뉴욕대 교수)/어라 켄이치(일본 난징학회 사무국장) / 수잔 레비너(<난징의 강간> 편집자)/야마자키 요시히로(카시와쇼보 편집부)/카시하라 도쿠시 교수 인터뷰 - <난징의 강간>은 거짓이다? !! . 새롭게 밝혀진 3장의 의혹 사진 . 출간 무산된 <난징사건과 일본인> <난징의 강간을 읽는 법> . 이그너서스 딩(세계항일전쟁사수호연합회)/아이리스 장 부모 인터뷰 22:50- 일본 난징대학살 부정파들의 논리 - 부정파의 대표주자인 히가시 나카노 교수는 책 <난징사건 증거사진을 검증하다>에서 난징대학살 관련 143장의 증거사진중 증거로 통용 될만한 사진은 단 한장도 없었다고 주장, 난징대학살 자체를 부정. - 난징대학살 기록 영상 - 부정파의 대표주자 히가시나카노 교수 . 방문 인터뷰 거절하는 히가시나카노 교수 . 목베기 시합 등 학살 장면 사진들 조작 주장 . 카시하라 도쿠시(츠루문과대학 교수) 인터뷰 - 부정할 수 없는 참전군인 무라세의 사진첩 . 당시 일본군 운전병으로 참전했던 무라세는 학살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기자가 아니기에 검열을 피해 일본에 있던 아내에게 고스란히 전해 질 수 있었다. . 무라세 아이(참전군 무라세 부인) 인터뷰 - 문제 제기된 사진들과 영상 . 난징전 33연대 6중대 참가 군인 . 카시하라 도쿠시(츠루문과대학교 교수) 인터뷰 39:57- 난징대학살 부정파들의 재기 - <난징의 강간> 출간을 두고 벌어진 난징대학살 논란은 7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전발에 걸친 논쟁에서 이미 패배했던 부정파에게 재기의 발판이 됐다. - 일본의 우경화 대중적 지지 확산 . 자민당 의원 100여명이 참여한 역사검토위원회 . 이타가키 타다시 참의원 인터뷰 . 1946.5.3 도쿄 극동국제군사재판 장면 50:43- 다음주 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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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순간, 1회 | 20051204 | 55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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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내용
00:18- 프롤로그(1937년 난징 대학살을 담은 유일한 영상 마기 필름)
02:01- 타이틀 05:53- 최초로 난징학살을 서양에 알린 작가 아이리스 장의 자살 - 2004년 11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고속도로변에서 30대의 중국계 여자가 머리에 총을 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녀의 이름은 아이리스 장, 지난 96년 난징대학살을 고발한 논픽션 [난징의 강간 (The Rape of Nanking)]으로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던 작가였다. [난징의 강간] 출판 이후, 아이리스 장은 난징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인권을 위해 싸우는 행동주의자의 상징이 됐다. 유명 작가로, 미국내 중국 인권운동의 대명사로 부상하고 있던 그녀는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일까? 무엇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일까? - 캘리포니아 클라라 카운티 고속도로변 자살 현장 . 돈 레이(당시 현장출동 경찰) 인터뷰 - TV 뉴스, 신문 보도 내용 - 아이리스 장, 일본 대사와 미 PBS 방송 대담 장면 - 이이리스 장 장례식 - 경찰 단순자살 결론/죽기 하루전 총을 산 스포츠용품점 18:34- 아이리스 장의 <난징의 강간> - 기자 출신 아이리스 장이 두번째 작품인 <난징의 강간>을 출간하게 된 배경 . 아이리스 장 어머니 인터뷰 23:34- 잊혀진 '홀로코스트' 난징 대학살 - 아이리스 장은 난징대학살을 인간이 인간에 대해 저지른 만행중 가장 끔찍한 사건으로 평가했다. 별다른 저항이나 전투가 없었던 상황에서 자행된 대학살은 일본군이 중국에 공포를 주기 위한 목적에서 공식적으로 저지른 발작이었다. 일본군은 백기를 든 포로는 물론이고 어린 아이, 노파 할 것 없이 배를 가르고, 사지를 자르는 등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30만이 넘는 사람들을 ‘도살’ 했다. 그러나 희생자들은 침묵해야 했고 학살자들은 망각했다. 아이리스 장은 난징대학살을 잊혀진 ‘홀로코스트’라 일컬으며 다시 쓰기 시작했다. - 당시 난징전 참가 일본인 인터뷰 - 전 난징대학살기념관 부관장 인터뷰 35:30- 난징의 쉰들러 욘 라베 - 당시 독일인 사업가 욘 라베는 중국 난민들의 피난처였던 안전지대의 리더로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살아 있는 부처'로 불리웠고 난징 대학살을 막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었다 - 난징대학살기념관 관장 인터뷰 - 욘 라베(난징국제안전구 대표)의 사진과 서신들 - 베를린에 살고 있는 욘 라베의 손녀 43:26- <난징의 강간>, 논쟁의 불씨가 되다 - 난징 대학살을 "20세기 최고의 거짓말"이라 주장해온 일본은, 97년 출간되자마자 60만부를 넘기며 미국인들에게 난징대학살을 알린 <난징의 강간>을 주목, 그리고 일본에서 출판되지도 않은 책을 비판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잇따라 개최, 아이리스 장은 일본 우익의 협박에 시달리게 되고 난징 대학살의 진실 공방에 불씨가 됐다. - 난징 대도살 기념관 - 난징 대학살 생존 할머니 인터뷰 - 미국 매릴랜드 국립문서보관소 - 2000년 오사카 20세기 최대의 거짓말 난징대학살 철저검증 집회 - 수잔 레비너(<난징의 강간> 편집자) 인터뷰 53:21- 에필로그 54:08- 다음주 2부 예고 |
프로그램 구입안내
02-789-0123- 평일:09:00~18:00
- 점심:12:00~13:00
- 토요일, 공휴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