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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민속기행 2
<책 소개>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한반도의 등줄기를 따라가는 답사의 기록.
백두대간 산간마을 곳곳의 흔적을 통해 한국의 민중 생활사를 조명한다.
「백두대간 민속기행」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방송된 내용을 엮어낸 이 책은 백두대간자락 300여 개 마을을 답사하면서 담아낸 생생한 현장의 기록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지금까지도 각 지역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전통 민속문화를 담고 있는 이 책은 딱딱한 서술보다는 살아있는 현지의 언어와 분위기를 그대로 그려내는 데 집중해 객관적이면서도 편안한 글로 우리의 역사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등줄기이며, 그곳에 땅을 일구고 문화를 만들어온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다. 백두대간 자락은 땅 없는 사람들의 생존 현장으로, 난리를 피해온 이들의 은신처로 활용되기도 했는데, 저자는 산비탈에 화전을 일구고, 약초를 캐어 생계를 유지하는 등 조금은 특별한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에서 형성된 다양한 생활방식과 문화를 보여준다.
1권에는 지리산에서 추풍령까지, 속리산에서 소백산까지의 구간을 담았다. 이 책에서는 각 구간을 직접 걸으며 기록한 지리적, 역사적 특징을 간략하게 정리해 소개하고 있으며, 마을별로 현지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가감 없이 기록해 현장감을 더한다.
<저 : 최상일>
1957년 경기도 여주에서 출생. 1970년대 후반, 즉 유신 말기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 대학시절을 험하게 보낸 뒤 가까스로 졸업했고, 1981년 MBC프로듀서로 입사했다. 1989년부터 10여 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라져가는 토속민요를 수집하여 CD 103장과 해설집 9권으로 이루어진 『한국민요대전』을 발간했고, 2003년에는 북한민요 자료를 입수하여 CD 10장으로 이뤄진 『북한민요전집』을 발행했다. 1999년부터 「최상일의 민속기행」 프로그램을 시작하여 백두대간기행, 소리꾼기행, 오지기행 등으로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1991년 특집프로그램 「풍물굿」으로 ABU(아태방송연맹) 방송문화상을 수상했고, 1995년 「한국민요대전」 프로그램으로 ‘한국방송대상’ 수상, 2002년에 펴낸 민요 교양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1·2권)로 이듬해 ‘백상출판문화상’ 저작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밖의 저서로 무형문화재 조사자료집 「남도들노래」, 민요 관련 논문으로 「한국 민요의 분류에 관하여」, 「한국 민요의 DB화 방안에 대하여」등이 있다. 현재 MBC 민요전문PD로서 「민속기행」,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샘 깊은 물」 등의 라디오 프로그램을...1957년 경기도 여주에서 출생. 1970년대 후반, 즉 유신 말기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 대학시절을 험하게 보낸 뒤 가까스로 졸업했고, 1981년 MBC프로듀서로 입사했다. 1989년부터 10여 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라져가는 토속민요를 수집하여 CD 103장과 해설집 9권으로 이루어진 『한국민요대전』을 발간했고, 2003년에는 북한민요 자료를 입수하여 CD 10장으로 이뤄진 『북한민요전집』을 발행했다. 1999년부터 「최상일의 민속기행」 프로그램을 시작하여 백두대간기행, 소리꾼기행, 오지기행 등으로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1991년 특집프로그램 「풍물굿」으로 ABU(아태방송연맹) 방송문화상을 수상했고, 1995년 「한국민요대전」 프로그램으로 ‘한국방송대상’ 수상, 2002년에 펴낸 민요 교양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1·2권)로 이듬해 ‘백상출판문화상’ 저작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밖의 저서로 무형문화재 조사자료집 「남도들노래」, 민요 관련 논문으로 「한국 민요의 분류에 관하여」, 「한국 민요의 DB화 방안에 대하여」등이 있다. 현재 MBC 민요전문PD로서 「민속기행」,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샘 깊은 물」 등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있으며, 토속민요 전문 웹사이트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www.urisori.co.kr)를 손수 운영하고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백두대간, 사람이 사는 산자락/ 『백두대간 민속기행』의 구간 나누기/
3. 태백산에서 대관령까지
3-1 늦은목이─박달령─도래기재 구간
박달령 아래 떠돌이 등짐장수의 무덤 /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생달
“이젠 인생 종착역에 왔습니다” /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오전약수
열 명이 둘러앉아 밥 먹던 소나무 둥치 / 경북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
“죽자 사자 금 캐서 하루 저녁에 툭 털어먹구” / 경북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 금정
백두대간 고랭지 채소농사의 산 역사 / 경북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 삼동치
“내가 청승시라 그런지, 팔자가 나빠 그런지” / 경북 봉화 춘양면 우구치리 사지목
3-2 곰넘이재─태백산─사길령 구간
부치개 꾸묵는 애당리 복날 풍경 / 경북 봉화군 춘양면 애당리
“아이고, 난 요새 그게 먹고수와요” / 경북 봉화군 소천면 구마동(1)
“우리 소는 어디 갔나, 너~와 너와!” / 경북 봉화군 소천면 구마동(2)
“장꾼들 많이 나갈 때는 길이 벌게요” / 강원 태백시 혈동 정거리
태백산 살래골 아끈이 할머니 / 강원 태백시 혈동 사내골
3-3 싸리재─쑤아밭재─한의령 구간
“교회 다니듯이 산에 다니니까…” / 강원 정선군 고한읍 소두문동
옛터꿈 고목나무샘 등금뱅이 주막 / 강원 태백시 창죽동 안창죽
산이 좋아 산에 사는 나무박사 어르신 / 강원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1)
원시림이 허허벌판이 된 내력 / 강원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2)
술동이가 바닥날 때까지 마시던 강냉이술 / 강원 삼척시 도계읍 점리
“지금 그런 떡 한 번 먹어보면 참 좋겠는데” / 강원 태백시 상사미동 둘밭
3-4 구부시령─큰재─댓재 구간
농바우골에서 만난 훈장님 / 강원 삼척시 신기면 대기리 농바우
‘감자 옥수수 호박찜’ 해먹던 대이리 골짜기 / 강원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평지말
떡코리 짊어지고 잔치 보러 가던 사람들 / 강원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골말
메밀밭에서 들은 할머니들 아라리 / 강원 태백시 조탄동 천포
귀리 이야기 / 강원 삼척시 하장면 용연리
“7월 달은 해도 진 기라” / 강원 삼척시 하장면 중봉리 벌뒤
3-5 이기령─백복령─생계령 구간
“돼지 두어 마리 잡으먼 얼마나 푸진지”
082 / 강원 정선군 임계면 도전리 상두밭
“더바지고개로 새초 치러 가자” / 강원 동해시 이기동
“우리도 정선 풍호명으로 추매 댕겼잖소” / 강원 동해시 달방동 서학동
최고의 삼이 나던 정선 풍호명 / 강원 정선군 동면 호촌리 풍천, 호명
맛난 곶감에 오골계 알까지 얻어먹다 / 강원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 버물
다 무너진 자병산 아래, 영밑마을 / 강원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 영밑
3-6 닭목재─대관령 구간
구릿대 퉁소가락 울려 퍼지던 닭목재 고원 / 강원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닭목이
닭목재 청정지대에서 만난 꿀벌 할아버지 / 강원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닭목골(1)
향긋한 진짜 꿀맛을 보다 / 강원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닭목골(2)
“전에는 그리운 거 없이 먹고살았어요” / 강원 평창군 도암면 수하리 피골(1)
“야, 토끼고기가 이렇게도 맛있나?” / 강원 평창군 도암면 수하리 피골(2)
“대관령 서낭님을 잘 우해야 편안해” / 강원 평창군 대관령
4. 진고개에서 진부령까지
4-1 황병산─진고개 구간
멧돼지 사냥터였던 황병산 / 강원 평창군 도암면 차항리 안거래지
소 두 바리 값에 밭 만이천 평 / 강원 평창군 도암면 병내리 개자니
“영세 옥시기 사러 소금 지구 가요” / 강원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딱다구리가 울면은 꼭 임신이 됐어” / 강원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청학동
4-2 신배령─구룡령 구간
“여~ 옛날에 큰길이 됐었어요” / 강원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가마소
“이삿짐을 매봉령으루 다 져 넘겼어요” / 강원 양양군 현북면 법수치리 본말
“아유, 나 이젠 염생이 찾아야 돼” / 강원 홍천군 내면 명개리
“그것두 고뱅이 힘 있을 때 얘기지” / 강원 양양군 서면 갈천리 마치레
“마음이 깨끗하면 하늘도 선물을 주는 거라구” / 강원 양양군 서면 갈천리
조랑말 넘던 구룡령 옛길을 찾아서 / 강원 양양군 서면 갈천리 구룡령 옛길
4-3 조침령─점봉산─한계령 구간
“나사를 좀 풀러보셨나?” / 강원 인제군 인제읍 귀둔리 황골(1)
“노래하구 이래믄 뭐 떠들렁하지 뭐” / 강원 인제군 인제읍 귀둔리 황골(2)
“곰배박달 안 넘어 댕긴 게 한 20년?” / 강원 인제군 인제읍 귀둔리 양지말
“엿술 한 대접 먹구 안 쓰러지는 사람 없어” / 강원 양양군 서면 오색리(1)
“투가리를 깎아서 황토지름을 멕여요” / 강원 양양군 서면 오색리(2)
“산에 가보믄 맨 보물이야” / 강원 양양, 인제군 점봉산
4-4 미시령─새이령─진부령 구간
“노래는 참말이구 얘기는 거짓말이라구” /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1)
“그러니 뭐, 등때기를 맨지질 못하지” /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2)
“물 좋구 공기 좋구, 장작불 때구 이밥 먹구” / 강원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
“그때는 설악산에 곰두 있었는데” / 강원 고성군 간성읍 흘리
<책 속으로>
일본군의 만행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어르신 가족은 만주땅을 떠나 다시 고향인 함경도 청진으로 들어왔다. 거기서 소학교와 고등학교 1년을 다닌 어르신은 철도국 기관사로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해방이 되면서 일본인들이 떠나고 철도시설이 노후 되면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북에서는 해방 되자마자 수송돌격대라 해가지고 아침에 나가면 이삼일 만에 들어오고, 여간 힘 안 들었어요. 겨울인데, 함경북도 청진을 출발해가지고 소련 군용 석탄차를 몰고 저 두만강 국경 회령까지 운전하고 돌아오는데, 함경북도가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데, 오다 뢺니까 석탄도 다 떨어졌지, 물도 떨어졌지, 앞에 개통도 안 됐는 기라. 앞에 차가 가야 내가 가는데, 상당히 구배야. 고~까지만 올라가면 되는데 고~까지 못가고 기차가 멈춰 버렸지.…" --- 「"이젠 인생 종착역에 왔습니다"」 중에서
일제 때 한반도의 백두대간 산자락에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소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다. 윤씨 어르신이 일본인들로부터 산판일을 배웠다는 강원도 삼척의 산악지대도 그런 곳이었다. 나무 하나의 길이가 무려 150자, 45미터에 달했고, 그루터기에 열 명이 올라앉아 밥을 먹을 정도로 나무가 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런 큰 소나무들을 삼척에서만 무려 21년 동안이나 베어냈다는 것이다. --- 「열 명이 둘러앉아 밥 먹던 소나무 둥치」 중에서
"박정희대통령 시절에 그 이북에서 간첩이 나와서 사람을 디리 죽이구 이래가지구 다 소개를 해서 여기다가 이래 집을 지-주구 국유림을 그냥 막 일궈가지고 한 집에 4500평씩을 노나 줬죠. 노나 주구 이래 농사를 지- 무이, 콩 강냉이는 여게 전혀 안 되고 전부 무수 배추만 해서 식생활을 해 나가는데, 식구 많은 사람들은 빛을 지구 이래가지구 땅 다 내삐리구 모두 내려가서 모두 콩 강냉이 해먹구 살구 뭐 벌어묵으러 광산에도 가구 이랬지요. 나는 여게서 처음 입주해가지구 35년인지 36년인지 이렇게 되는데, 상구 여게 눌러붙어 있지요."
어르신이 간단하게 삼동산 고랭지밭의 역사를 간추려 주셨다. 60년대에 산간 오지에 간첩들이 출몰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전을 해먹고 살던 독가촌(외딴집)을 모아서 산꼭대기에 데려다 놓고 국유림을 깎아 채소농사를 짓도록 한 것이다.
<책판사 리뷰>
사라져가는 우리 민요를 집대성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의 저자 최상일 PD가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한반도의 등줄기를 온전히 답사한 기록, 『백두대간 민속기행』
백두대간 산간마을의 옛 생업관행과 생활문화, 그리고 민간신앙에 관한 세세한 증언을 이끌어냄으로써, 비어있는 한국 민중생활사의 한 자락을 생생하게 복원한 보물 같은 책!
‘사라져가는 옛 삶의 기록’을 위해 이 땅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는 라디오 PD의 노력이 두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로 사라져가는 민요의 기록과 전승에 남다른 성과를 보여준 최상일 PD가, 이번에는 사라져가는 산촌의 옛 생활과 전통 민속문화를 찾아 기록하여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백두대간 민속기행’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방송된 내용을 다듬은 것이다. 백두대간 자락의 300여 개 마을을 답사하면서, 110여 개 마을의 어르신들을 만나 오래 전에 사라진 산촌의 생업관행과 생활문화 그리고 민간신앙에 관한 세세한 증언을 이끌어냈다.
수년간의 공백을 포함하여 기행을 시작한지 10년 만에 세상에 내놓게 된 『백두대간 민속기행』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하던 산촌의 옛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민속학 또는 인류학 분야의 주목할 만한 저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에서도 그랬듯이, 『백두대간 민속기행』에 실린 글들은 결코 학자들의 논문이나 보고서처럼 딱딱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시중에 넘쳐나는 기행문들처럼 저자 자신의 생각이나 감상이 쉽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저자는 인터뷰어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다큐멘터리스트이다.
저자가 우리의 전통 생활풍습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은 민요를 수집하는 과정에서였다. 민요의 배경을 알아야 민요를 제대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요 수집을 마치고 나서 곧 민속기행을 시작했고, 옛 생활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백두대간의 산촌을 먼저 찾았다. 백두대간의 산촌에서 어르신들이 해주신 이야기들은 그대로 산촌의 생활사 기록이다. 저자는 될수록 오래된 이야기를 듣고자 하였고, 그 결과 대략 193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말까지 약 25년간에 걸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백두대간은 자연으로서의 산맥인 동시에 오래 전부터 그 안에서 땅을 일구고 문화를 일구어온 사람들의 터전이기도 하다. 백두대간 자락은 일찍이 난리를 피해 찾아온 비결파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고, 땅 없는 사람들이 들어와 생존을 꾀하는 삶의 현장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산비탈 곳곳에 화전을 일구고, 나무를 잘라 숯을 굽거나 목기를 만들어 팔고, 산에서 나물을 뜯거나 약초를 캐어 생계를 유지했다. 수많은 골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가 살았던 만큼, 백두대간에는 무척이나 다양한 생활방식과 문화가 생겨났다.
기행을 다니면서 저자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백두대간 자락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서 먹고 살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 또 외부 세계와의 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도 궁금했다. 그 결과 저자는 산촌의 다채로운 생업관행과 소박하고 인정 넘치는 산간문화, 그 험한 백두대간을 뒷동산처럼 넘어 다니던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내놓기 전 다시 다녀온 백두대간은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많이 달라져 있었다고, 저자는 술회한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백두대간은 많은 곳이 몰라볼 정도로 변해 있었다. 도로가 새로 뚫리면서 마을이 통째로 없어진 곳도 있었고, 집이 있던 자리가 황무지로 변한 곳도 많았다. 봄가을로 성대하게 치르던 전북 장수군의 장안산 산신제도 없어져버렸고, 훈훈한 인심의 무주구천동 향미식당도 없어졌다. 삼도봉 골짜기의 하나 남았던 억새집은 이제 집터조차 찾기 힘들다. 백두대간은 여전히 의연하게 버티고 있건만, 그 자락에 살던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민요든 민속이든 무형 문화란 본디 살아 있는 사람들을 통해 표현되는 것이기에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라고 해서 모두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형의 문화를 대하는 안목이 부족하고 사라지는 문화에 대한 대책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 그런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 책을 내놓게 된 동기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