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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민속기행 1

<책 소개>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한반도의 등줄기를 따라가는 답사의 기록.
백두대간 산간마을 곳곳의 흔적을 통해 한국의 민중 생활사를 조명한다.

「백두대간 민속기행」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방송된 내용을 엮어낸 이 책은 백두대간자락 300여 개 마을을 답사하면서 담아낸 생생한 현장의 기록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지금까지도 각 지역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전통 민속문화를 담고 있는 이 책은 딱딱한 서술보다는 살아있는 현지의 언어와 분위기를 그대로 그려내는 데 집중해 객관적이면서도 편안한 글로 우리의 역사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등줄기이며, 그곳에 땅을 일구고 문화를 만들어온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다. 백두대간 자락은 땅 없는 사람들의 생존 현장으로, 난리를 피해온 이들의 은신처로 활용되기도 했는데, 저자는 산비탈에 화전을 일구고, 약초를 캐어 생계를 유지하는 등 조금은 특별한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에서 형성된 다양한 생활방식과 문화를 보여준다.

1권에는 지리산에서 추풍령까지, 속리산에서 소백산까지의 구간을 담았다. 이 책에서는 각 구간을 직접 걸으며 기록한 지리적, 역사적 특징을 간략하게 정리해 소개하고 있으며, 마을별로 현지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가감 없이 기록해 현장감을 더한다.

<저 : 최상일>

1957년 경기도 여주에서 출생. 1970년대 후반, 즉 유신 말기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 대학시절을 험하게 보낸 뒤 가까스로 졸업했고, 1981년 MBC프로듀서로 입사했다. 1989년부터 10여 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라져가는 토속민요를 수집하여 CD 103장과 해설집 9권으로 이루어진 『한국민요대전』을 발간했고, 2003년에는 북한민요 자료를 입수하여 CD 10장으로 이뤄진 『북한민요전집』을 발행했다. 1999년부터 「최상일의 민속기행」 프로그램을 시작하여 백두대간기행, 소리꾼기행, 오지기행 등으로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1991년 특집프로그램 「풍물굿」으로 ABU(아태방송연맹) 방송문화상을 수상했고, 1995년 「한국민요대전」 프로그램으로 ‘한국방송대상’ 수상, 2002년에 펴낸 민요 교양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1·2권)로 이듬해 ‘백상출판문화상’ 저작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밖의 저서로 무형문화재 조사자료집 「남도들노래」, 민요 관련 논문으로 「한국 민요의 분류에 관하여」, 「한국 민요의 DB화 방안에 대하여」등이 있다. 현재 MBC 민요전문PD로서 「민속기행」,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샘 깊은 물」 등의 라디오 프로그램을...1957년 경기도 여주에서 출생. 1970년대 후반, 즉 유신 말기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 대학시절을 험하게 보낸 뒤 가까스로 졸업했고, 1981년 MBC프로듀서로 입사했다. 1989년부터 10여 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라져가는 토속민요를 수집하여 CD 103장과 해설집 9권으로 이루어진 『한국민요대전』을 발간했고, 2003년에는 북한민요 자료를 입수하여 CD 10장으로 이뤄진 『북한민요전집』을 발행했다. 1999년부터 「최상일의 민속기행」 프로그램을 시작하여 백두대간기행, 소리꾼기행, 오지기행 등으로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1991년 특집프로그램 「풍물굿」으로 ABU(아태방송연맹) 방송문화상을 수상했고, 1995년 「한국민요대전」 프로그램으로 ‘한국방송대상’ 수상, 2002년에 펴낸 민요 교양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1·2권)로 이듬해 ‘백상출판문화상’ 저작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밖의 저서로 무형문화재 조사자료집 「남도들노래」, 민요 관련 논문으로 「한국 민요의 분류에 관하여」, 「한국 민요의 DB화 방안에 대하여」등이 있다. 현재 MBC 민요전문PD로서 「민속기행」,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샘 깊은 물」 등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있으며, 토속민요 전문 웹사이트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www.urisori.co.kr)를 손수 운영하고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백두대간, 사람이 사는 산자락/ 『백두대간 민속기행』의 구간 나누기/

1. 지리산에서 추풍령까지
1-1 지리산 구간/
“일이라는 건 겁을 안 냈어요” / 경남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아랫새재, 외곡
퐅국시 삶아먹으며 보리풀 썰던 시절 / 경남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단천
하늘 아래 첫 동네, 지리산 심원, 달궁마을 / 전남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 심원, 전북 남원시 산내면 덕동리 달궁
지리산 마천골, 샘물 좋은 집 어르신들 /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양정
1-2 복성이재─백운산─육십령 구간
훈김 나던 옛 터엔 염소 울음소리만… / 전북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 텃골
잘 익은 된장 맛 나는 백운산 자락의 옛 생활 / 경남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 중기
풍수해로 괴로운 산골 고통기행 / 경남 함양군 서상면 옥산리 상부전
육십령을 넘나드는 장계장터 사람들 / 전북 장수군 장계면 장계장터
장계장에서 만난 어느 할머니의 가족사 / 전북 장수군 계남면 궁양리 새터
1-3 덕유산─빼재 구간
비승비속의 할머니가 들려주신 전설같은 이야기 /경남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조산
“세월이 와 이로콤 변하는가 몰라” / 경남 거창군 북상면 산수리 갈골
덕유산 상봉에 나물 뜯으러 가세 / 경남 거창군 북상면 소정리 개삼불
모구밭골의 이북 출신 화전민 이야기 / 경남 거창군 고제면 개명리 상수내
고추밭에서 만난 할머니의 인생역정 / 전북 무주군 무풍면 삼거리 상오정
변치 않는 인심의 맛, 구천동 향미식당 / 전북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구천동
덕유산을 뒷동산처럼 넘어 다니던 사람들 / 전북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 덕곡
1-4 덕산재─삼도봉 구간
“오래 살아 웬수여…”, 장자터의 할머니 / 전북 무주군 설천면 미천리 장자터
미천골 억새지붕 오두막 사람들 / 전북 무주군 설천면 미천리 점말
삼도봉자락 부처님 자리, 불대마을의 옛생활 / 전북 무주군 설천면 대불리 불대(1)
“그럭저럭 산 것이 60년이 되았네” / 전북 무주군 설천면 대불리 불대(2)
호랑이를 산신으로 모시던 사람들 /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산신님도 못 말린 남편 시집살이 / 경북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해인동
찹쌀 인절미가 울고 간 감자떡의 고향 / 경북 김천시 부항면 대야리 대야동
입소리로만 남은 숲실마을 풍물소리 / 경북 김천시 부항면 대야리 숲실
1-5 우두령─황학산─추풍령 구간
미운 남편 뒷바라지로 산을 헤매던 할머니/충북 영동군 상촌면 궁촌리 점마, 지통마
산골 인심이 좋은 이유 / 경북 김천시 대항면 주례리 안골
돌미륵이 남아 있는 추풍령 옛길 /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작점리. 신안리 반고개

2. 속리산에서 소백산까지
2-1 속리산─청화산─조항산 구간
송아지 안고 넘던 동터목고개 / 경북 상주시 화남면 동관리 동터목(1)
동터목에서 들은 평안도 이야기 / 경북 상주시 화남면 동관리 동터목(2)
앞 못 보는 할머니의 아름다운 추억 /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대목리 웃대목
꽃가마 타고 넘던 밤티재의 기억 / 경북 상주시 화북면 중벌리 밤티
전쟁도 비켜간 길지, 상주 우복동 / 경북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 화산
4승지지로 꼽히던 문경 궁터마을 / 경북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 궁터, 고모리
2-2 대야산─버리미기재─은티 구간
둔덕산에 꽃핀 할머니들의 옛날 얘기 / 경북 문경시 가은읍 죽문리 수리봉
“꽃 같은 새댁이 왜 저런 장사를 해?”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벌바우, 선유동
눈썰미와 손재주로 헤쳐온 험한 세월 / 충북 괴산군 청천면 관평리 중관평
산돼지 등짝에 소나무가 자라던 시절 /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성골
향긋한 송잇국 끓여 먹던 오봉정마을 / 충북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 은티
청춘을 돌려다오, 분지골의 청춘가 / 충북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 안말
우째 방이 이리 안 뜨신고? / 경북 문경시 마성면 상내리 한실
2-3 하늘재─차갓재─벌재─저수재─묘적령 구간
도둑질하듯 아이 낳던 하늘재의 옛 생활 /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점말
음지가 양지 될까, 문경 베바우 마을 /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포암동
“제일 재미있고 좋은 기, 풀 빌 때야” / 경북 문경시 문경읍 평천리 달목이(월항)
문경 당골에서 만난 비결파 어르신 / 경북 문경시 동로면 명전리 당골
반석에 도로리떡 쳐 먹던 산골 / 경북 문경시 동로면 명전리 건학, 차갓
문경에서 들은 홍천 명개리 이야기 / 경북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 안산다리
별신굿이 벌어지던 문경 동로장 / 경북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 쇳골
산골에서 만난 한량 어르신 /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 음달
“동쪽으로 뻗은 찔레 까시를요…” / 경북 예천군 상리면 고항리 문드래미(문곡)
“무르팡이 척 구부러지데요.” / 충북 단양군 대강면 남천리 샘골
2-4 죽령─튼백산─고치재 구간
다자구할머니가 언짢아할 죽령 고갯길 / 충북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 텃골
빈대떡 얻어먹으며 들은 할머니들 신세타령 / 충북 단양군 단양읍 마조리
황덕불에 구워 쌈 싸 먹는 불감자 / 충북 단양군 단양읍 천동리 샘골
“산 밑인데 산신을 안 모시면 어떡해요?” / 충북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 새밭
“남 하는 거 흉내는 다 냈어요” / 충북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 곰절
세월이 갈라면 제 혼자 가지… / 충북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
닙쌀 좁쌀 굵은 팥에 큰아긴덜 밥 못하나 /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
고사리 꺾고 꿀밤 꾸 묵던 꼬치재 /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 세거리

<책 속으로>

‘하루벌이는 산판이 나았다.’ 이것이 6?25 전쟁 후에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으로 들어온 이유였다. 돈도 땅도 없이 맨몸으로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나무라도 베어내고 화전이라도 일궈먹을 수 있는 산으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산에서 약간의 기술만 있으면 할 수 있었던 일이 참나무를 베어 숯을 구워내는 일이었다.
“숯굴은 꺼먼 흙이 나오면 안 되고 황토가 나와야 돼요. 그래서 숯굴 자리 보는 사람은 반풍수 다 된다고 그래요. 흙을 파내고 둥그만하게 담을 싸요. 게다 참나무를 끊어갖고 세우고, 그 위를 삿갓 모양으로 만들어요. ... ...” --- 「“일이라는 건 겁을 안 냈어요”」 중에서

동네 우환 없이 해달라고 온 동네 사람이 나와 빌고 놀았던 잔치가 산제와 당산제였다면, 집집마다 우환 없이 해달라고 떡 해놓고 조상님께 비는 의식은 도신이라는 것이었다. 도신은 안주인이 도맡아 했다.
“도신이라고 있었어. 가실에 추수해서 술하고 떡 해서 갈라묵고…. 떡은 시루떡. 솥에 쪄갖고 웃묵에 손 비비고, 여기 저기 손 비비고. 조상한테 절하는 것이지. 정제는 조왕님이라 하고. 도신도 하는 집이나 하지. 노인 잘되고 아이들 잘되고 재수대...‘하루벌이는 산판이 나았다.’ 이것이 6?25 전쟁 후에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으로 들어온 이유였다. 돈도 땅도 없이 맨몸으로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나무라도 베어내고 화전이라도 일궈먹을 수 있는 산으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산에서 약간의 기술만 있으면 할 수 있었던 일이 참나무를 베어 숯을 구워내는 일이었다.
“숯굴은 꺼먼 흙이 나오면 안 되고 황토가 나와야 돼요. 그래서 숯굴 자리 보는 사람은 반풍수 다 된다고 그래요. 흙을 파내고 둥그만하게 담을 싸요. 게다 참나무를 끊어갖고 세우고, 그 위를 삿갓 모양으로 만들어요. ... ...” --- 「“일이라는 건 겁을 안 냈어요”」 중에서

동네 우환 없이 해달라고 온 동네 사람이 나와 빌고 놀았던 잔치가 산제와 당산제였다면, 집집마다 우환 없이 해달라고 떡 해놓고 조상님께 비는 의식은 도신이라는 것이었다. 도신은 안주인이 도맡아 했다.
“도신이라고 있었어. 가실에 추수해서 술하고 떡 해서 갈라묵고…. 떡은 시루떡. 솥에 쪄갖고 웃묵에 손 비비고, 여기 저기 손 비비고. 조상한테 절하는 것이지. 정제는 조왕님이라 하고. 도신도 하는 집이나 하지. 노인 잘되고 아이들 잘되고 재수대통 하라고 그러지 뭐.” --- 「지리산 마천골, 샘물 좋은 집 어르신들」 중에서

“머리 곱게 고께롱! 고깨고깨롱! 그 우리 딸 머리 곱다 그런댜. 머리 고~깨롱! 고~께고께! 구구국 구꾸, 그러고 울어. 하하하. 비요로로로~ 비요로로로~ 딴 새가 인자 또 그렇게 울어. 하하하….”
“또 어떤 새는, ‘께끼 최서방, 께끼 최서방, 술값 닷 돈 주쇼!’ 그랴. 하하하…. 옛날에 최서방이 술값을 안 갚고 죽었디야. 새가 ‘술값 닷 돈 주쇼!’ 할 때는 아주 볼통시럽게 하드라고.”
“왜 하필 최서방이래요? 내가 최서방인데….”
“하하하…. 왜 최서방인지 몰르지. 그리구 또 지쪽새가 있어. 메느리가 김치를 한 쪽 먹다가 시어머니가 쳐다보니까 놀래서 꿀꺽 생키다가 목에 걸려 죽었디야. 그래서 새가 돼갖고, ‘지쪽 지쪽 지쪼로로로~ 지쪽 지쪽 지쪼로로로~ 지쪽 걸맀다고….’ 하하하…. 옛날에는 시집살이가 얼마나 무섭다고…. 요새는 새가 어드로 다 가고 없드라고. 꾀꼬리도 없당게.” --- 「훈김 나던 옛 터엔 염소 울음소리만…」 중에서

“그런데 난중에 가실이 된게네 옷을 한다고 그래쌌고 뭐 그랴. 난 시집을 가는지 뭐 우짠지도 모르고 그냥 뭐 어른들이 하는 대로 봤지 뭐. 그래 인제 막 두부를 하고 뭐 꼬두밥을 쪄서 술을 하고 그러드라고. 인제 그래 해갖고 시집을 간다 하는데, 신랑이 왔디야. 옛날에 왜 질 안 뺏긴다고, 신랑이 새복에 왔어.”
“질을 안 뺏긴다구요?
“신랑이 남보다 앞에 온다고 일찍 왔디야.”
“아, 먼저 온다구요?
“신랑이 왔다고 수근수근 해싸. 할머니들이 바글바글바글 방으루 앉아가지고….”
이 대목에서 해설이 필요하다. 신랑이 신부 집에 장가갈 때 금기사항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길을 뺏기기 전에’, 즉 다른 혼례 행렬이 길을 지나가기 전에 일찌감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혼례 행렬끼리 길에서 마주치면 길 높은 쪽으로 가야 좋다고 해서 길에서 싸움을 벌이는 수도 있었다. --- 「그럭저럭 산 것이 60년이 되얐네」 중에서

“더덕도 캐고, 도라지도 캐고, 고사리 날 적에는 고사리 뜯고, 참나물 나면 참나물 뜯고, 가을 되면 능이라 하는 버섯 그것도 하지, 또 송이 따지, 찬바람 나면 굽더더기 따지, 또 인자 여기 도토리, 가을이 되면 또 그기 많이 나면 도토리 줍지. 매일 여여 산에 뭐, 이 산이 부자산이라요, 부자산. 나만 부지런하면요, 남한테 참 돈 꾸러 안 갑니다. 삽추뿌리, 당귀, 작약, 옛날엔 아주 뭐뭐 가서 한 망태기씩 캐오고 했는데, 요새 하도 사람이 들어오니께요 없어. 붙어나는 게 없어. 옛날엔 가면 그냥 모시대 참나물 취덩거리 같은 게 낫으로 깎아서 막 지게다 막 척척 짊어지고 댕겼어요. 지금은 하도 사람덜이 뿌리도 캐 가지, 나물도 쥐뜯어 가지, 그기 없어요.”

사라져가는 우리 민요를 집대성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의 저자 최상일 PD가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한반도의 등줄기를 온전히 답사한 기록, 『백두대간 민속기행』

백두대간 산간마을의 옛 생업관행과 생활문화, 그리고 민간신앙에 관한 세세한 증언을 이끌어냄으로써, 비어있는 한국 민중생활사의 한 자락을 생생하게 복원한 보물 같은 책!

‘사라져가는 옛 삶의 기록’을 위해 이 땅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는 라디오 PD의 노력이 두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로 사라져가는 민요의 기록과 전승에 남다른 성과를 보여준 최상일 PD가, 이번에는 사라져가는 산촌의 옛 생활과 전통 민속문화를 찾아 기록하여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백두대간 민속기행’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방송된 내용을 다듬은 것이다. 백두대간 자락의 300여 개 마을을 답사하면서, 110여 개 마을의 어르신들을 만나 오래 전에 사라진 산촌의 생업관행과 생활문화 그리고 민간신앙에 관한 세세한 증언을 이끌어냈다.

수년간의 공백을 포함하여 기행을 시작한지 10년 만에 세상에 내놓게 된 『백두대간 민속기행』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하던 산촌의 옛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민속학 또는 인류학 분야의 주목할 만한 저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에서도 그랬듯이, 『백두대간 민속기행』에 실린 글들은 결코 학자들의 논문이나 보고서처럼 딱딱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시중에 넘쳐나는 기행문들처럼 저자 자신의 생각이나 감상이 쉽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저자는 인터뷰어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다큐멘터리스트이다.

저자가 우리의 전통 생활풍습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은 민요를 수집하는 과정에서였다. 민요의 배경을 알아야 민요를 제대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요 수집을 마치고 나서 곧 민속기행을 시작했고, 옛 생활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백두대간의 산촌을 먼저 찾았다. 백두대간의 산촌에서 어르신들이 해주신 이야기들은 그대로 산촌의 생활사 기록이다. 저자는 될수록 오래된 이야기를 듣고자 하였고, 그 결과 대략 193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말까지 약 25년간에 걸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백두대간은 자연으로서의 산맥인 동시에 오래 전부터 그 안에서 땅을 일구고 문화를 일구어온 사람들의...사라져가는 우리 민요를 집대성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의 저자 최상일 PD가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한반도의 등줄기를 온전히 답사한 기록, 『백두대간 민속기행』

백두대간 산간마을의 옛 생업관행과 생활문화, 그리고 민간신앙에 관한 세세한 증언을 이끌어냄으로써, 비어있는 한국 민중생활사의 한 자락을 생생하게 복원한 보물 같은 책!

<출판사 리뷰>

‘사라져가는 옛 삶의 기록’을 위해 이 땅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는 라디오 PD의 노력이 두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로 사라져가는 민요의 기록과 전승에 남다른 성과를 보여준 최상일 PD가, 이번에는 사라져가는 산촌의 옛 생활과 전통 민속문화를 찾아 기록하여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백두대간 민속기행’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방송된 내용을 다듬은 것이다. 백두대간 자락의 300여 개 마을을 답사하면서, 110여 개 마을의 어르신들을 만나 오래 전에 사라진 산촌의 생업관행과 생활문화 그리고 민간신앙에 관한 세세한 증언을 이끌어냈다.

수년간의 공백을 포함하여 기행을 시작한지 10년 만에 세상에 내놓게 된 『백두대간 민속기행』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하던 산촌의 옛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민속학 또는 인류학 분야의 주목할 만한 저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에서도 그랬듯이, 『백두대간 민속기행』에 실린 글들은 결코 학자들의 논문이나 보고서처럼 딱딱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시중에 넘쳐나는 기행문들처럼 저자 자신의 생각이나 감상이 쉽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저자는 인터뷰어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다큐멘터리스트이다.

저자가 우리의 전통 생활풍습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은 민요를 수집하는 과정에서였다. 민요의 배경을 알아야 민요를 제대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요 수집을 마치고 나서 곧 민속기행을 시작했고, 옛 생활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백두대간의 산촌을 먼저 찾았다. 백두대간의 산촌에서 어르신들이 해주신 이야기들은 그대로 산촌의 생활사 기록이다. 저자는 될수록 오래된 이야기를 듣고자 하였고, 그 결과 대략 193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말까지 약 25년간에 걸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백두대간은 자연으로서의 산맥인 동시에 오래 전부터 그 안에서 땅을 일구고 문화를 일구어온 사람들의 터전이기도 하다. 백두대간 자락은 일찍이 난리를 피해 찾아온 비결파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고, 땅 없는 사람들이 들어와 생존을 꾀하는 삶의 현장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산비탈 곳곳에 화전을 일구고, 나무를 잘라 숯을 굽거나 목기를 만들어 팔고, 산에서 나물을 뜯거나 약초를 캐어 생계를 유지했다. 수많은 골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가 살았던 만큼, 백두대간에는 무척이나 다양한 생활방식과 문화가 생겨났다.

기행을 다니면서 저자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백두대간 자락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서 먹고 살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 또 외부 세계와의 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도 궁금했다. 그 결과 저자는 산촌의 다채로운 생업관행과 소박하고 인정 넘치는 산간문화, 그 험한 백두대간을 뒷동산처럼 넘어 다니던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내놓기 전 다시 다녀온 백두대간은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많이 달라져 있었다고, 저자는 술회한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백두대간은 많은 곳이 몰라볼 정도로 변해 있었다. 도로가 새로 뚫리면서 마을이 통째로 없어진 곳도 있었고, 집이 있던 자리가 황무지로 변한 곳도 많았다. 봄가을로 성대하게 치르던 전북 장수군의 장안산 산신제도 없어져버렸고, 훈훈한 인심의 무주구천동 향미식당도 없어졌다. 삼도봉 골짜기의 하나 남았던 억새집은 이제 집터조차 찾기 힘들다. 백두대간은 여전히 의연하게 버티고 있건만, 그 자락에 살던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민요든 민속이든 무형 문화란 본디 살아 있는 사람들을 통해 표현되는 것이기에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라고 해서 모두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형의 문화를 대하는 안목이 부족하고 사라지는 문화에 대한 대책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 그런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 책을 내놓게 된 동기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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